한국전쟁 이후 파괴된 제반 산업시설 및 주택·공공건물·철도등의 복구 건설을 위해 건재공업 발전을
    추진하였음
     - 3개년 계획기간(1954∼1956) : 전쟁복구에 필요한 시멘트수요가 증대함에 따라 해방전에 건설된         해주, 승호리, 천내리와 고무산 등 시멘트 공장의 복구 추진
     - 5개년 계획기간(1957∼1960) : 시멘트 생산능력 확충(연산 100∼150만톤)을 기본목표로 정하고         전후 일부 시설만이 가동되었던 봉산시멘트공장을 구소련의 지원하에 보수·확장(1959∼1962)하여         2.8마동 시멘트공장으로 개칭
     - 제1차 7개년 계획기간(1961∼1970, 3년 연장) : 천내리 시멘트공장 시설능력을 80만톤으로 확장         시키고 1968년과 1970년에는 2.8마동 시멘트공장에 각각 키른 1기를 추가 건설
6개년 계획기간(1971∼1976)에 시멘트 생산능력을 750∼800만톤으로 확장시킬 것을 목표로 석회     석의 증산에 주력
1974년에는 2.8마동시멘트공장에 키른 1기를 증설, 1973∼1978년 사이에 덴마크 및 일본으로부터
    설비를 도입하여 북한 최대의 순천시멘트공장을 건설
제2차 7개년 계획기간(1978∼1984) : 시멘트 생산목표를 연간 1,200∼1,300만톤으로 계획하였다가     10대 전망목표의 하나로 80년대 말까지 2,000만톤으로 증대시킬 것을 제시
    - 이에 따라 시멘트공장의 원료기지 확충과 기존 설비의 현대화 추진 및 대규모 마그네샤크링카       생산기지를 조성
    - 청강화력발전소에 50만톤 규모의 플라이애쉬 시멘트공장을 건설하고 김책제철연합기업소에는       30만톤 규모의 수재슬래그시멘트 생산시설을 설치하였으며 1982년 만포(8.2)시멘트 공장의 조업을       개시
제3차 7개년 계획기간(1987∼1993) : 최종연도인 1993년까지 2,200만톤의 시멘트 생산목표를 책정     하고 구체적인 추진방법을 수립
    - 이 결과 생산능력은 1986년의 940만톤에서 1990년에는 1,202만톤으로 증가하였으나 1993년까지       의 생산목표인 2,200만톤에는 크게 미달
90년대 들어 자재난이 심각해짐에 따라 자재확보를 강조하고 계획기간 사이에 둔 1994∼1996년의
    완충기 중 무역제일주의와 관련, 시멘트의 수출증대를 주요 사업의 하나로 추진하였으나 낮은
    가동률과 조악한 품질로 실적은 미미하였음